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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손톱깎이로 세계를 깎다! 보잉777도 넘은 쓰리쎄븐 근황 소비더머니

https://youtu.be/AiPm8JzNK1A

이 콘텐츠는 한 작은 손톱 깎이 가 어떻게 세계를 제패한 성과를 보여줍니다. 김영규 회장 의 이야기를 통해 봄막이 아프고 장애를 앓고 있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대기업과 경쟁하며 세계 1위 브랜드로 성장해 나간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손톱 깎기 하나로 시작된 그의 여정은 열정, 기술 개발 , 그리고 품질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어떻게 회사를 부흥시켰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후 상속세 문제와 짝퉁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여전히 '메이드 인 코리아'의 가치를 느끼게 합니다. 다른 사람도 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분야에 집중 하고 있을지 고민하게 되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역사와 기원

 

쓰리세븐(777), 전 세계 손톱깎이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한 대한민국의 강소기업 역사와 성공 비결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쓰리세븐의 역사는 1975년, 김형규 회장이 충남 천안에서 대성 산업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김형규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고난을 겪었는데, 1935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 투암을 앓았고, 한국 전쟁기간에 포탄 파편에 맞아 한쪽 눈을 잃고, 다리에도 장애를 얻게 되었다.

 

 초기 도전과 발전

 

김형규 회장은 20대 초반부터 미군부대에서 나온 물건들을 팔면서 생계를 꾸리기 시작했다.

 

특히, 트림이라는 미제 손톱깎이가 매우 잘 팔리자, 이를 제대로 만들면 대박이 나겠다 생각하여 손톱깎이 제작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드럼통이나 깡통을 재료로 사용하여 손톱깎이를 만들었지만, 품질이 좋지 않아 손톱 뜯기 수준이었다.

 

그러나 김형규 회장은 나이 40줄에 작은 손톱깎이 공장을 인수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기술 개발과 품질 향상 

쓰리세븐의 성공 비결은 단연 품질에 있다.

손톱깎이는 수만 번 반복되는 동작에도 탄성을 잃거나 날이 닳지 않도록 하는 정교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금형, 열처리, 도금 등 30여 가지 공정을 거쳐 제작되었으며, 특히 포스코에서 공급받은 고품질의 열연 강재를 사용했다.

 

쓰리세븐만의 핵심 기술은 절삭력으로, 윗날과 아래 날이 정확히 맞물리지 않고 윗날을 0.02mm 가량 길게 처리하여 절삭력이 1.5배 이상 강하고, 잘린 단면이 깔끔하도록 했다.

 

 수출과 글로벌 성장

초기에는 정부의 수출 정책과 맞물려 수출을 목표로 하였지만, 당시 금속 가공 기술에서 뒤처져 existed OEM 방식으로 수출해야 했다. 그러나 기술 개발과 공장 설비에 대한 투자를 통해 점차 자체 브랜드를 런칭하게 되었다.

 

1988년에는 미국 시장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110만 세트의 주문이 들어오며,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 직원이 생산에 참여하여 기한을 맞추는 등 열심히 노력했다.

이로 인해 수출고가 500만 달러에서 1년 만에 1천만 달러로 두 배가 뛰었고, 세계적인 유통체인 월마트에도 납품에 성공하여 탄탄한 공급망을 확보했다.

 

 중국 시장 진출과 명성

 

한중 수교 이후, 쓰리세븐은 중국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1997년 중국의 주룽지 부총리가 쓰리세븐 손톱깎이를 손에 들고 "우리 중국 기업들은 왜 이렇게 좋은 제품을 못 만드냐"라고 말한 것이 CCTV에 방영되며, 이는 엄청난 대박 광고가 되었다.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2000년대 초반에 중국이 수입한 제품 1위가 삼성전자 애니콜 다음으로 쓰리세븐 손톱깎이가 되었다.

 

 상표권 분쟁과 지속적인 성장

쓰리세븐은 미국 보잉과의 상표권 분쟁에서도 승리했다.

보잉이 먼저 777기를 앞세워서 등록을 해 놓았지만, 쓰리세븐은 1984년에 미국의 777 상표로 수출했던 기록을 찾아내어 증거를 제출하여 보잉이 양보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작은 한국 회사가 세계적인 대기업을 이긴 것으로 기사화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도전과 변곡점

 

2000년대 초반, 쓰리세븐은 코스닥 시장에 입성하고, 1975년 창업 이후로 적자 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너무 유명해지면서 복제품과 짝퉁이 판을 치기 시작했고, 중국산 저가 제품들의 품질이 좋아지며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쳤다.

 

2005년에는 바이오벤처 회사를 인수했지만, 김영규 회장이 2008년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상속세 이슈가 터지며 회사 지분이 중회 홀딩스에 넘어가게 되었다.

가족들이 지분을 회복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며 세계 1위 자리를 중국 기업에게 내주게 되었다.

 

 현재와 미래

쓰리세븐의 사례는 상속세 관련 이슈로도 자주 언급된다.

최근 정부는 25년 만에 상속세 개편안을 발표하고, 국회에서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쓰리세븐의 이야기는 한 분야에 몰입하여 한 우물만 파고 들어간 결과, 가슴 한가운데에 메이드 인 코리아를 새긴 손톱깎이를 세계 최고의 제품으로 만들어낸 성공담으로 남아 있다. 이는 현재도 회자되는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쓰리세븐의 성공은 단순한 손톱깎이 하나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그 뒤에는 철저한 품질 관리, 기술 개발,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쓰리세븐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였고, 그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